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주셨다.
이 모든 유익은
그리스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들
곧 고통받고 죽어 가는 인생들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고 비참하게 죽으심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행한
악에 대한 대가였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문을 부수고 다시 살되
죽지 않은 불멸의 몸,
곧 눈부신 권능의 부활체가 되심은
자신의 신성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벌레 같은 우리를
그러한 영광에 참여하게 하는
너무나 감사한 배려 때문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 밖에서
우리와 따로 존재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고마운 유익을
받아 누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와 한 몸이 되기 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거룩한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이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모든 재산은 우리의 것으로 된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
즉 성령은
우리와 그리스도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
천상의 모든 보화가
객관적으로 인류 모두에게 제시되었건만
실제로 그것을 누리려면
반드시 성령을 통해서
축복의 근원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3, 1, 1).
성령은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마음에 인을 치신다.
마치 하나님의 도장이 찍히듯이
성령의 증거는
우리 마음속에
확실한 믿음이 일어나게 만든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이 성령의 인을 치셨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을 그리스도에게 주시고
그리스도는 다시 희생과 공로를 더하시는데
그것이 거룩한 영을 통해
우리 속에 전달되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곧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특권과 함께
자녀의 능력을 받는다.
그래서 성령을 '둘째 아담'
또는 '살려주는 영'이라 한다.
첫 아담은 하나님이 창조한 '사는 영'이었지만
둘째 아담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 영으로
우리 속에 들어오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새 생명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자연적인 생명과는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그러기에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부른다.
왜냐하면
그 생명의 수여가
그리스도의 하신 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가 중보자로서 하시는 일의 효력이
성령의 우리 안에 계심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3, 1, 2).
그가 우리 속에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른 곳에서 찾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이미 받았음을 안다.
이 모든 영적인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천국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지혜와 지식과 능력과 방언과 예언과 영분별
그리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는 참 사랑의 은사는
성령 받은 사람의 특권이다.
이것이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랴?
또 주어진 것을 어떤 방법으로 알랴?
그것은 성령이 들어오심과 동시에
모두 다 주어지는 것이다.
성령은 느낌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안다.
그리고 은사도 믿음으로 받고 사용한다.
참 능력자가 되려면
느낌을 초월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성령은
우리를 썩어질 세상에서 분리하여
영원한 기업을 소망하는 무리고 구별시킨다(3, 1, 2).
그러기 때문에 그는 '성결의 영'이시다.
아무리 하늘의 메시지를 듣고 보아도
우리는 그것을 땅의 복과 연결시켜서 보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육신적인 문제에 대한 성급한 해답이
속히 주어지길 원한다.
우리의 기도까지도 육신적인 요구로 채워진다.
그러나 성령이 하늘의 복을 보게 하면
그 그림자 같은 땅의 문제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해결한다.
그러면 이 땅의 문제도 자연히 해결되게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세상 사람의 눈에는
해결로 보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와 한 몸이 되어
그가 가진 것이 모두 우리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성령은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상속자로 만드는
'양자의 영'이요,
우리 기업에 대한 '보증이며 인'이다.
그리고 하늘의 '생명'이다.
그는 죄를 씻는 '물'이요
정욕을 태우는 '불'이요
생기를 주어 강하게 하는 '기름'이다.
또한 은사의 근원이 되는 '샘물'이며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는 '주의 손'이다(3, 1, 3).
그리하여 우리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고
그로 옷 입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