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hbh7 2013. 7. 30. 11:04

큐티, 함부로 하지 말자

필자 : 이택환


성경은 종종 창문에 비유된다. 그러나 성경은 창문이 아니다. 창문은 투명한 유리너머로 바깥세상이 보일지라도, 외부의 바람을 막아주고 실내의 따뜻한 공기를 보호해준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차단장치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성경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하기 보다는 세상과 똑바로 보게 하고, 올바로 소통하게 한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성경을 창문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보다 성경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기능하는 안경의 렌즈와 같은 것이 아닐까'

안경 렌즈로서의 성경은 때때로 작은 것도 크게 보는 볼록렌즈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흐린 것도 똑똑히 보는 오목렌즈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보는 줌렌즈로 기능하기도 하며, 허상을 제거하고 실상을 보게 하는 난시교정렌즈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성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은 실로 오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렌즈의 조화가 신통하다고 해서, 아무 안경이나 임의로 착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문의의 진단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받지 않는다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똑바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 삐뚜로 보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시력까지도 완전히 망쳐버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큐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걱정(?)이다. 큐티를 한다는 것은 매일 매일 말씀의 렌즈를 착용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큐티가 제공하는 렌즈가 전문의의 처방을 받은 객관적인 렌즈라기보다는, 지나치게 개인의 실존과 직결된, 매우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렌즈일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큐티 책자들이 소개하는 성경을 묵상하는 방법을 보면, 큐티가 얼마나 개인적인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소위 실용적인 성경읽기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대개 큐티 안내서의 첫 번째 주의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모든 큐티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큐티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유가 개인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응답이나, 적용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데 있다(오늘날 큐티가 얼마나 바리새적인 경건의 판단기준으로 오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논하지 않겠다).

그런 점에서 큐티는 하나님과의 교제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영성훈련으로서의 성경읽기인'렉치오 디비나'와도 다르다. 이러한 큐티의 문제점에 대해 정용섭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큐티를 통해 열정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나무랄 수야 없고,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큐티식 성경읽기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제시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변을 과도하게 성경 안에서 찾으려고 애를 쓰는 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성경을 흡사 은행에서 필요에 따라서 돈을 빼다 쓰듯이 도구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는 성경 자체가 우리의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거나 성경읽기를 게을리 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열정을 갖고 성경을 읽되 객관적인 성경의 핵심을 포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이 물론 개인의 결단과 용기, 더 나아가서 세부적인 행동 지침을 다루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요소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다. 우리의 성경읽기의 가장 결정적인 오류는 성경에 부수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인간 반응에 사로잡혀서, 그것이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큐티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서의 성경읽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스탠리 하우어와스가 <성경 해방시키기>라는 책에서 말한 '성경읽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능력을 갖추고 그 이야기에 충실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대부분의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의무는 아니라 할지라도, 성경을 읽을 권리가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가정에 도전하고자 한다. 교회가 미국에 있는 개인 그리스도인들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없다...그러한 성경 읽기는 개인주의, 자기탐닉, 폭력을 조장할 것이다.

' 신학훈련을 받은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주석의 도움이나 깊은 묵상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큐티 본문의 맥락을 전혀 잡지 못하거나, 완전히 헛짚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섣불리 이루어진 '적용'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전문가의 처방을 받은 렌즈로서의 깊이 있는 성경공부나 깊은 묵상이 전제된 성경읽기가 아니라면, 현재의 큐티는 차라리 소극적 성경읽기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 가지 자신의 관심거리를 최대한으로 축소시키고, 오직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만 관심을 둘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필요를 성경에서 찾아서 적용시키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적용'거리를 강조하는 현재의 큐티는 그런 욕망을 조장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욕망이 가득할 때는 차라리 성경을 덮자. 큐티, 함부로 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