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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행복하게 성령님과 동행하는 성화의 길

suhbh7 2009. 3. 25. 12:21

즐겁고 행복하게 성령님과 동행하는 성화의 길


말씀과 찬양과 기도에 전념하는 일생의 삶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의 탄성이 영적 생명으로 거듭난 신자가 성화의 삶을 시작하는 신호탄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그 무거운 죄짐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하다 여김을 받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의 잔재인 양심의 가책이라는 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는 죄짓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루터와 칼빈이 지적한 대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상실한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로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처럼 채울수록 목이 마르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끊임 없이 남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며, 거짓을 꾸미는 추악한 삶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부정하고 스스로 자신이 자신의 왕 노릇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의 타락 이래로 인간을 지배해온 사탄의 올무에 묶여 사탄의 뜻에 순종하며 지옥으로 행진을 하루도 쉬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으로 거듭난 새 영적 생명은 죄밖에 지을 수 없는 자유 대신,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순종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거듭난 신자는 아직도 육신 속에 살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앞세운 사탄의 유혹 가운데 살지만, 그렇지만 이제는 그 사탄의 유혹에 빠지기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가 더 쉬운 영적 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원죄를 씻음 받아 거듭난 인간은 타락 이전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영적 상태를 회복하여 성령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능히 물리쳐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듭난 영적 새 생명도 성령님과 동행함 없이는 세상 사람과 똑같은 타락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일에서부터 칭의 구원을 받기까지의 모든 구원의 역사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것에 유념하면, 성령님과의 동행함이 없이는 다시 세상에 속하는 사탄의 종 노릇을 할 수 있게 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에서 저희가 내 안에 내가 저희 안에 있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시고, 또 제자들에게 주님이 승천하시면 성령을 보내줄 것이고 성령께서 보혜사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면, 성령님이 곧 하나님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말세에 성도들에게 진리를 깨우쳐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며 신자에게 성화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순종의 자유와 사탄을 물리치는 능력을 주시는 성삼위의 한 분이심을 새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성령에 충만해지는 일에 수고하고 진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에 충만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매일같이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양에 열심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신통한 능력이 있음을 저는 경험하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심을 생각하면 성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세상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우리를 엄습할 때 성경을 펴십시다. 그 어느 구절을 묵상해도 우리는 성령님의 강력한 주장과 인도하심을 얻게 되며 사탄은 물러갑니다. 예배소서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씀이 그대로 진리입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찬양에 열심하는 삶이 바로 성화의 길을 걷은 신자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 충만한 삶이며, 성령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며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삶을 닮아 거룩하게 되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성화의 삶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일이므로 무겁고 힘든 일리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지고 가기 때문에 성화의 삶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입니다.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행복의 삶입니다.


성령 충만한 신자는 그가 칭의 구원을 받는 순간에 외친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매일 같이 외치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불평이나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에 슬픔이 있을 수 있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에는 불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많은 물질, 세상의 명예, 세상적인 미인과 즐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성화의 길을 걷는 신자는 세상적 어려움에 봉착해도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 고난이 지금 이 시간 이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최선의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에서 의미를 찾게 됩니다. 그것이 자신을 더욱 단련하여 정금처럼 순결한 영으로 만들기 위한 훈련이며, 때로는 징계인 것을 감사하며 받아들입니다.


다윗 왕은 성화의 삶을 살았던 하나님의 종이지만, 여러 번 넘어지고 실수 했습니다. 그는 낮잠을 자고 난 후 우리아의 아내를 탐하여 살인죄까지 지었습니다. 충성스런 군대들은 생명을 내놓고 적군과 싸우는데 군대의 총수인 다윗 왕은 낮잠을 즐겼음을 보아 그가 당시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게을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게을렀던 다윗 왕은 육욕의 노예로 떨어져 살인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기뻐하신 것은 그가 곧 나단 선지의 질책 앞에 왕의 체면과 권위를 내던지고 회개하고, 베개가 썩을 만큼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윗의 회개 기도인 시편 51편을 성화의 길을 가는 신자가 항상 드려야 할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성화의 길을 걷을수록 자기 자신이 더욱 더 부족하고 보 잘 것 없는 존재임을 처절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찬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자가 성화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신자입니다.


저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만 있으면 이 세상도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칭의 구원을 얻은 신자가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매일 성령에 충만하다면, 아직도 육신 속에서 꿈틀거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꺾어 이기며, 우는 사자와 같이 신자를 삼키려 드는 사탄의 괴계와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성화의 길, 거룩한 삶의 길을 성령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서서히 그의 성품이 변화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신자의 성품으로 자리 잡아가게 됩니다. 마침내 우리 구원의 동역자 이신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변화된 성품을 통하여 맺어지기 시작하며 그 열매가 매일같이 여물고 익어가서, 육신의 옷을 벗을 때, 신자는 영화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화의 길을 가는 신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화의 길을 걷는 신자는 청지기의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과 건강을 포함해서 재능 그리고 물질과 재산을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잘 관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이웃 사랑에 사용하라고 그 관리를 담당시킨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자는 십일조에서 그칠 것이 아니고 선한 방법으로 능력껏 벌어서 자기 생활비와 확대 재생산을 위한 투자를 제하고는 모두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선진국에서 기부가 성행하고 유산을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 교회나 사회에 바치는 것은 청지기의 삶의 본보기가 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 구원의 길이기도 합니다.


저는 찬송가 427장이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공통된 고백이고 찬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또는 자매님,곧 찬송가 427장을 불러보세요. 기쁘지요, 즐겁지요, 행복하시지요? 우리 모두 한 사람의 낙오자가 없이 성령님과 함께 기쁘고 즐거운 성화의 길을 육신의 장막을 떠날 때까지 걸어감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종국적인 구원을 얻도록 합시다.

뉴스앤조이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