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숭실대 김회권 교수는 2001년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꿈꾸는터 윤동혁
기독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타 학과 학생들에게도 인기 있는 유명 강사다. 그중에서도 ‘구약학 이해’는 가장 빨리 마감되는 과목 중의 하나. 딱딱한 구약학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학생들이 모여드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그의 강의에는 구약시대 울부짖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구약 선지자들이 오늘의 교회와 사회를 향해 울부짖는다고 말한다.
김회권 교수는 수업시간에 “강남의 대형 교회에 가서, ‘땅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외치는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구약의 옛 선지자들처럼 말이다.
그는 지난 7년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의 명성에는 거품이 너무 많다.”
김 교수의 첫 번째 말이었다.
“나의 명성에는 거품이 너무 많습니다.”
김 교수는 공식적인 인터뷰가 처음이라면서, 방송과 신문에 나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가 거품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가 좁기 때문에, 조금만 활동을 해도 주목을 받고 부풀려진다는 것.
이어 김 교수는 “내가 학벌이 있고, 대학교수라서 한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할 조건을 갖췄기 때문에 생긴 명성”이라며 지난 7년간의 활동에는 거품이 많았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김 교수의 이런 누룩을 돌아보게 한 장본인은 바로 그의 가족들이다.
“저는 아들, 딸에게 존경받고 있지 못합니다. 내 아내는 내가 허풍이 심하다고 말합니다.”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둘째 아이가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책을 쓰고 활동해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네.”라고 일침을 가한 것.
이에 김 교수는 앞으로 “자녀들에게 존경받기 위해서 더 분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높아진 명성은 ‘세상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아들의 지적에 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신학자가 되도록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20대 시절의 가난한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회권 교수는 한때 14만 원의 월수입으로 학원 선교를 했다. 당시 그는 라면과 만두로 끼니를 때웠다. 대학교수가 된 지금의 생활과는 다른 모습이다. 어떻게 그때와 같은 일관된 신학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때도 나는 걸었고, 지금도 걷습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합니다.”
그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걸어다닌다. 그리고 등산을 가장 좋아한단다. 가난한 복음전도사 시절, 관악산에서 승냥이 울음소리가 나는 칼바람을 맞으며, 연주암 주변 바위 위에서 기도하던 때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김 교수는 “내가 산을 타지 않으면 그 시절로 돌아가기가 힘들다.”며 “20대 시절의 가난한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채찍질하고 있다.”고 밝혔다.